
1949년, 문교부가 꾸린 한 심의회가 난감한 문제 앞에 앉았다. 4천 년도 더 지난 어느 해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바꾸면 며칠이 되는가. 위원들의 결론은 뜻밖에 담백했다. 환산은 할 수 없다. 그러니 '10월 3일'이라는 숫자 자체를 지키자. 그해 10월 1일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은 그렇게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했다.
정확한 날짜보다 기억을 택한 결정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참 한국적이라고 느낀다. 계산이 끝난 자리에서 마음이 이어 쓴 기념일, 그것이 개천절이다. 그래서 이날 우리가 묻는 것은 "언제 시작되었나"보다 "우리는 누구인가"에 가깝다.
겨레가 스스로에게 들려준 첫 이야기
신화 속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고, 쑥과 마늘을 견딘 곰이 사람이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다. 이 이야기를 처음 글로 남긴 책은 고려의 승려 일연이 1281년 무렵부터 엮은 『삼국유사』다. 정작 『삼국유사』는 중국 전설 속 요임금의 즉위를 기준으로 연대를 헤아렸다. 오늘날 쓰는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대는 그 뒤 조선 시대 『동국통감』의 계산을 따른 것이다. 올해 정부 경축식이 '제4,358주년'을, 태백산 행사가 '단기 4,359년'을 내건 것도 햇수를 세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신화는 연대표가 아니라 한 공동체가 품어 온 소망의 언어다. 어둠 속에서 견딘 끝에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이상은 이 땅의 사람들이 무엇을 귀하게 여겨 왔는지 보여 준다. 우리 건국 이야기가 인내와 이웃 사랑을 앞세운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나라를 잃은 시절에 붙든 날
개천절이라는 이름을 지어 근대의 기념일로 되살린 것은 1909년 나철이 다시 일으킨 대종교다. 그들은 해마다 음력 10월 3일에 행사를 열었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이날을 국경일로 경축했다. 주권이 기울던 때 사람들은 가장 먼 시작을 붙들었다. 영토를 잃은 겨레에게 기원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남은 국경선이었다. 총칼로 땅과 관청은 빼앗을 수 있었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빼앗을 수 없었다.
그 시절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민족의 고난 앞에서 손을 잡았다. 1919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이 2명이었다. 불교계의 참여는 이 운동이 특정 종교의 일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일로 번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때 교회는 이 땅에서 소수였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민족을 등지지 않고 그 아픔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광복 뒤 정부는 1948년 단군기원을 공식 연호로 삼았고, 1949년 3·1절·제헌절·광복절과 더불어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했다. 한 겨레라는 이름 아래 고난을 나눈 기억이 이 국경일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신앙은 달라도 민족의 짐을 나누어서 진 3·1운동의 경험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처음부터 '같음'보다 '함께 짊어짐'에서 단단해졌음을 일러 준다.
오늘의 '우리'를 다시 생각하다
올해 경축식의 주제는 '널리 이롭게 대체 불가 대한민국'이다. 행정안전부는 홍익인간의 뜻을 바탕으로 세계 속에서 저력을 보이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례에서는 거제·통영 집중호우 때 매몰된 이들을 구해 낸 박경수 소방위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읽는다. 만세삼창은 수영장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시민을 살려 낸 정은아 간호사가 선창한다. 경축 공연은 '하늘을 열고 벽을 허물다'를 주제로 탈춤과 현대무용, 풍물을 엮었고, 지방정부와 재외공관 행사까지 합하면 2만 9000여 명이 이날을 기린다. 이웃을 건져 올린 손이 홍익인간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생각, 하늘을 여는 일이 곧 벽을 허무는 일이라는 생각이 이 식순에 담겨 있다.
그 '이웃'의 얼굴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78만 명으로 주민등록 인구의 5.4%에 이르렀다. 2014년 개천절 경축사에서 당시 국무총리는 홍익인간의 현대적 의미를, 경계를 넘어 가치를 나누는 세계 시민의 정신에 견주었다. 지구촌 거의 모든 나라에 한민족이 뿌리내렸다는 사실도 아울러 짚었다.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환대받았듯, 이제 이 땅에 온 이들을 맞을 차례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지금도 교육의 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내세운다. 이 이상은 처음부터 핏줄을 넘어 '인간'을 향해 열려 있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일수록 가지를 넓게 뻗는다.
참으로 하늘이 열린 날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단군 이야기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비친 사람다움의 갈망까지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양심과 선을 향한 감각을 새겨 두셨기 때문이다(롬 2:15). 개혁주의 전통의 일반 은총 교리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이상 역시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에 베푸신 보존의 은혜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빛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한 혈통에서 모든 민족을 지으시고 그들이 살 시대와 경계를 정하신 까닭이, 사람들이 그분을 찾게 하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행 17:26-27). 그리고 그 설교를 이제는 어디서든 회개하라는 부르심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선포로 맺었다(행 17:30-31).
'하늘이 열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요단강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내려오셨다(막 1:10). 개천절의 하늘이 한 겨레가 상상한 시작이었다면, 요단강의 하늘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열린 하늘이다.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동시에 내 정체성의 마지막 자리는 하늘의 시민권에 있다고 고백한다(빌 3:20). 그 시민권은 한국인 됨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이웃을 품는 더 큰 사람으로 빚는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무리가 어린양 앞에 서는 장면을 보여 준다(계 7:9). 각 방언의 찬송이 울린다는 그 약속 안에 우리말 찬송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복음은 민족의 빛깔을 지우지 않되, 그 빛깔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한다.

돌아보면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길도 낯선 이들의 발걸음이었다. 바다 건너온 선교사들이 말을 배우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이 겨레의 이웃이 되었다. 우리는 먼저 환대받은 사람들이다. 지금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이웃으로 도우며, 말과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한 상에 둘러앉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 식탁에서 나는 홍익인간이 꿈꾼 이웃 사랑을,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 비로소 실천하게 되는 것을 지켜본다. 홍익인간이 사람의 선한 의지에 기대는 이상이라면, 복음은 그 의지마저 무너진 자리에 찾아오는 은혜다. 사람이 품은 가장 좋은 바람도 십자가 앞에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오늘은 제4,358주년 개천절이다. 나는 이날 태극기 앞에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동시에 이 땅에 보내진 이유를 묻는다. 우리가 지켜 온 것이 날짜가 아니라 기억이었듯, 우리가 물려줄 것도 혈통의 자랑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하늘이 열린 이 땅에서, 우리는 누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