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린후이인(林徽因)의 이름은 흔히 시인이나 문학인으로 먼저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시인이면서 건축가였고, 중국 고건축을 조사한 연구자였으며, 문화유산을 지키려 한 실천가였다.
10월 1일 베이징 TVCC에서 ‘둥량(栋梁)—량쓰청·린후이인 학술문헌전’이 다시 문을 열었다. 전시는 2021년 칭화대 예술박물관에서 처음 개최된 뒤 장먼, 선양, 타이위안, 상하이, 리좡 등을 돌았고, 5년 만에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전시는 2027년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栋梁’이라는 제목부터 두 사람의 삶을 상징한다. 중국 전통건축에서 ‘동량’은 건물을 떠받치는 핵심 목재를 뜻하고, 동시에 나라를 떠받치는 중요한 인재를 뜻한다. 글자 안에는 ‘林’과 ‘梁’이라는 두 사람의 성씨도 자연스럽게 들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량쓰청과 린후이인의 생전 원고, 고건축 실측도면, 사진, 초기 저서, 영상자료 등 약 400건의 자료가 전시된다.
린후이인의 삶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면 가운데 하나는 산시성 포광사를 발견한 일이다. 당시 일본 학계 일부에서는 중국 본토에는 당나라 시대 목조건축이 남아 있지 않다고 보았다. 량쓰청과 린후이인은 산시성 곳곳을 직접 조사했고, 1937년 포광사 동대전이 당나라 목조건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늘날처럼 자동차로 편하게 문화재를 찾아다닐 수 있던 시대가 아니다. 산길을 걷고 낡은 건축물을 직접 측정하며 기둥과 공포, 지붕 구조를 손으로 기록해야 했다.
린후이인의 특별한 점은 건축을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축은 한 시대의 역사와 기술,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남아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문화재 조사에 참여한 이유도 오래된 건물을 ‘옛날 물건’으로 보기보다 중국 문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린후이인이 여덟 살 딸 량짜이빙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된다. 포광사를 조사한 뒤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직접 그린 이동경로 지도와 함께 가족에게 당시의 경험을 기록했다. 학자로서의 기록과 어머니로서의 마음이 한 문서 안에 함께 담겨 있다.
린후이인은 중국 건축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편 량쓰청과 함께 중국 근대 건축학 연구와 교육의 기반을 만들었고, 고건축 조사와 문화재 보존에 참여했다.
그의 삶을 문학과 건축 가운데 하나로만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인물이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우리 건축과 문화재를 기록하고 보존하려 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문화재 보호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나라가 겪은 고민이었다.
도시는 발전해야 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발전인지는 늘 논쟁의 대상이 된다.
린후이인과 량쓰청이 고민했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오래된 도시를 그대로 얼려 둘 수는 없지만 도시의 역사적 구조를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철거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2024년 베이징 중축선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두 사람이 오래전 강조했던 베이징 도시 구조의 가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린후이인을 다시 보는 이유는 그가 유명한 시를 남겼기 때문만이 아니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CCTV·베이징일보, ‘栋梁—梁思成林徽因学术文献展’ 베이징 개막 및 약 400건 문헌 소개 京报网
林徽因,不只是诗人
很多人首先把林徽因看作诗人,但她同时也是中国现代建筑研究的重要人物。
10月1日,“栋梁——梁思成林徽因学术文献展”在北京TVCC重新开幕。展览展出近400件(组)手稿、古建筑测绘图、照片、早期著作和影像资料。
林徽因与梁思成曾经走访中国各地调查古建筑。他们在山西发现佛光寺东大殿,对中国建筑史研究具有重要意义。
林徽因认为,古建筑不仅是一栋老房子,也是历史、技术和社会生活留下的记录。
今天重新认识林徽因,也是重新思考一个问题:城市不断现代化的时候,我们应该怎样保存自己的文化记忆?
古建筑:고건축
建筑史:건축사
文化遗产:문화유산
测绘:실측·측량
保护:보호
文献:문헌










